2010년 1월 10일 일요일

2010 01 11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2010 01 11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원시적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근원적 삶과 철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먹고 싸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삶이란 게 그렇다.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주된 삶이다. 생산력이 증대되어 잉여 식량이 생기게 되면 이를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 투쟁속에서 문명은 발전해 간다. .. 등등. 여러 문화인류학자와 연사학자들이 연구를 해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 들이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이미 물질적으로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나 편해서 정신적 여유가 넉넉해졌다. 남은 에너지로 창의적인 생산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고 파괴적인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토록 간단하고 명료한 것을 자주 잊고 산다.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면 보인다, 투쟁의 삶의 공허함을. 마음을 비우면 보인다, 인생의 목표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를.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족/사회/인류/자연/우주 등의 발전에 한 삽 일을 해 줘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다.

해탈하려 애쓰지 마라. 해탈은 회피다. 힘껏 돕고 일을 해야 한다. 내 안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자연으로부터 받은 100%의 에너지를 200%로 만들어서 자연에 돌려줘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바른 삶이다.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물욕을 버려야 행복해지나?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 버려라.

경제적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물질에 목메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쌍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를 직접 대면해 보면 깊은 안정감에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물질은 우리가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최소한의 것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육체적 욕망을 모두 버리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하다는 것은 아니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다. 육체가 건강하고 즐거워야 정신도 건강해진다. 삶을 영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 자신이 원하는 문화적 수준을 맞출 수 있는 한에서 내재된 잠재력을 키워 나가면 된다. 잠재력이 커 질수록 물질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지 억지로 갖다 버리지 마라.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물질들이다.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으리라. 그때 버리면 된다.

어차피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물질의 소유에 지나치게 목멘 나머지 인간성을 상실하고 사랑, 평화 같은 숭고한 가치를 잃는다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저 동물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 끝없는 욕망.. 그 욕망을 자신의 잠재능력을 개발하는데 집중해보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을까?

2009년 9월 6일 일요일

2009 09 07 - 산속의 도인에 대한 비판

2009 09 07 - 산속의 도인에 대한 비판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Force vs. Power 다. Force는 외적인 힘 Power는 내적인 힘 (잠재력)을 의미한다. 저자는 한마디로 그냥 도인이다. 도를 득하고 미국속의 인도, 미국속의 계룡산이라 할 수 있는 아리조나주 세도나에 칩거하고 도를 닦는 사람이다.

대체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특히 의식과 잠재력에 대한 부분, 긍정적인 힘이 갖는 효과 등에 동의 한다. 하지만, 약간의 사이비 과학적인 요소가 있어 좀 찝찝하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은 그의 주장을 강조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고 다른 사적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아 OK 해 줄련다.

특히 Kinesiology가 본성에 내재된 진실의 목소리를 듣게 해 준다는 데에는 동의 한다.

나는 영적인 삶을 살면서 속세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사회를 등지고 사는 모습은 영적으로 옳지 않다. 간디처럼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수련 하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와 동포를 구원하는 게 진정 영적 지도자가 할 일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온갖 고문을 이겨내고 정의와 진리는 승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聖人의 모습이다. 산속에 혼자 들어가서 인류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깟 책 한 권? 그 책 한 권으로 많은 이들을 움직였겠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지 못하다.

회피해 버리기는 쉽다. 명상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그것을 향유하는 모습은 좋다. 명상의 황홀함과 편안함 즐거움 등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혼자 즐기지 마라. 베풀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인권을 유린하고 사회를 억압하는 자들 앞에 나서 싸우는데 앞장서라. 비겁하게 산속에 혼자 숨어있지 마라.

명상을 통해서 잠재력을 키우고 그 힘으로 온 인류에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2009년 9월 4일 금요일

선진국에 대한 그릇된 동경 - 일본은 없다

한국 사람은 선진국에 대한 그릇된 동경이 많다.

http://v.daum.net/link/4109347

이 블로그를 봐라. 일본이 좋다는 얘기들이다. 특히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선진국이고 우리는 못 그런다는 자아 비하가 깔려 있다.

하지만, 건설-교통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는 일본은 선진국이라 하기에 턱없이 후진적인 교통 체계를 갖고 있다.

교통은 소통과 안전을 목적으로 한다. 건널목에 사람이 없으면 빨간불일경우 조심해서 통과하는 것이 소통과 안전에 좋다. 빨간불이라고 무조건 기다리는 건 합리적이지 않고 융통성이 없는 것이지 질서를 잘지키는게 아니다.

일본보다 더 선진국인 미국은? 미국은 건널목에 사람이 없으면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교차로에 차가 서 있지 않으면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바닥에 센서가 있어서 교통량을 자동으로 감지하여 교통 신호가 연동을 한다.

이게 바로 선진국이다.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법은 더 이상 법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미국의 도로교통법에서 빨간불인데 교차로에 차가 없을 땐? 우선멈춤 후 지나가도 된다. 물론 사고시 비보호.. 하지만 신호위반으로 딱지를 때지는 않는다.

하나더... 속도위반에 대해서는? 속도가 100km 구간에서 모든 차들이 120km로 달리며 소통에 지장이 없을 경우에는 속도위반이 아니다. 소통과 안전에 문제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연동되는 신호체계는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돈이 없어 그렇다 치고 일본이 못 그러는 이유는?

글쎄.. 일본이 주머니에 돈만 많았지 머릿 속은 여전히 후진국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종전이후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정치 후진국이다.

한국인들아.. 자신감을 갖자. 자아 비하좀 그만하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고 일본보다 더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존중되며 발전의 포텐셜이 높은 나라다.

2차세계대전에 일본과 독일은 졌다. 기술력, 군사력에서 전세계 누구도 독일+일본을 앞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졌다. 왜 졌을까? 획일적이고 중앙 집중적인 체계는 다원적인 민주주의 진영 (영,미)을 이길 수 없다.

독일은 전쟁후 민주화 되었으며 유럽의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일본은 아시아의 골치 덩어리가 되고 있다. 아시에서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대만정도?) 핵 두 방의 약발이 벌써 떨어졌나보다. 그들은 왜 전쟁에 졌는지 아직도 모르나 보다.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최장집은 이명박대통령의 민주주의 파괴를 예언했었다.

이명박대통령의 민주주의 파괴는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최장집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02 11)에 보면 CEO대통령 이라는 패러다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정말 놀랍게도 지금 MB 정권하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예견했다. 닭살이 돋는다.

“CEO대통령 논의는 오늘날 세계를 풍미하는 신자유주의 내지는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한 산물임에 분명하다.” ..<중략>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펴고 사회복지를 확장하거나 사회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의 불평등 효과와 자본의 영향력을 통제하려는 국가 도는 정부의 모든 노력에 대해 반대한다.”.. <중략> .. “그들은 정치의 존립근거를 없애려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자체에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2002년도에 나온 책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놀랍다...

정치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똑똑해져야 한다.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미국을 보낼까 대치동을 통해서 서울대를 보낼까?

미국을 보낼까 대치동을 통해서 서울대를 보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에서 교육 시키는 게 낫다. (여건만 된다면) 단순히 한국의 공교육의 붕괴가 싫어서라는 판단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한국에서 명문대를 나오는 것은 그 아이 자체의 경쟁력을 가진다기보다는 서울대를 나옴으로써 만들어지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 서울대 나왔으면 똑똑한 친구겠구먼..’라는 저절로 먹고 들어가는 긍정적 선입견이다. 하지만 서울대와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한다. 내가 인생의 밑거름이 되는 것 역시 대게 Purdue에서 유학중 배운 지식과 경험들 아닌가!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미래를 가르친다. 교육이라는 것은 미래를 가르쳐야 한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고찰은 항상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 궁극적인 종착지는 미래에 있다. 공교육이 붕괴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아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워 주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게 해 주지 않고 그저 다들 사람들이 가는 대로 우르르 몰려갈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행복한 인생을 추구할 수 없다. 서울대 나오면 안정된 직업은 가질 수는 있겠지. 하지만 조직내에서 소모되어 버리는 인간이라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행복한 인생이라 함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판단에 대해서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남들이 좋아 보이는 직업을 아무리 가져도 소용 없다. 공무원 같은 직업이 그렇다. 보기에 정말 편하고 좋은 직업이지만 당사자는 그리 행복한 직업이 아니다. 개인의 잠재능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주지 못하는 직업이다. 개개인은 조직내에서 소모되어 버린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목표는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수나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는 아이들이지만 불행해 질 것이 염려되어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안정적인 수익을 갖게 되면 행복해 질 것이겠지만 의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다른 포텐셜을 무시해 버린다면 그 또한 후회스럽겠지.

한국에서의 명문대 졸업장은 좋은 직장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는 보증수표다. 하지만 갈수록 미국의 졸업장들이 한국에 몰려오고 있다. 그 숫자가 충분이 많아지면서 한국에서 새로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학계에 약간 정도로 엘리트 그룹을 형성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하나의 단일한 엘리트계층만 존재했었다. 서울대 출신. 하지만 이제 미국대학 출신들이라는 새로운 엘리트 계층이 형성된다. 기득권은 물론 서울대에 있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한국적 마인드를 충분히 갖고 있는 미국 유학파들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생각과 조직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자라오면서 배우고 경험한 폭과 깊이가 크게 차이가 난다. 아이디어의 수준에 큰 차이가 난다. 서울대는 학벌외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다. 매우 강력한 무기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새로운 엘리트계층인 유학파에 밀릴 수 밖에 없다.

, 유학파들이 한국에 오지 않고 미국에 눌러 앉는 게 대부분이라면 상황이 달라 질 수도 있겠다.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사랑의 힘 - Power of Love

인간은 사랑을 받으며 사랑에 힘입고 사랑에 울며 산다. 아무리 인기 좋고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도 그 인기는 본질에 대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고 많이 받아봤자 돌아서면 공허하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쉽게 변하지 않고 (물론 시간이 지나면 변하지만) 깊은 정서적 안도감을 준다.

사랑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와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칭찬은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좋은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 하다. 진실된 사랑의 마음은 아무리 못생긴 남자라도 미인을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진실된 사랑은 힘든 고난도 힘들지 않게 느끼게 해준다. 무료하고 지루한 삶에 활기를 넣어준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등등.. 수도 없이 많은 긍정적 효과들이 있다. 예수님이 그토록 사랑을 강조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이들이 예찬을 펼쳐왔기 때문에 여기서 더 반복해 봤자 식상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그 동안 흘려 들었던 고루한 말들이 새롭게 느껴질 때 고대의 성현들의 깨달음에 한걸음 다가갔다는 데에 가슴이 벅찰 뿐이다.